NieR:Automata HP
Platinum Games
굉장히 기다렸던 작품이다. 그런 것 치고는 다른 게임들에 밀려서 발매되고 한참 뒤에 하긴 했지만 기다린 작품 맞다. 아는 분 집에 놀러 갔을 때도 이거 하고 싶다고 부탁해서 체험판을 했을 정도니 말이다. 적으면서 생각났는데 PS4를 구입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게임을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이후에 또 체험판을 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실제 게임을 할 때 초반이 다소 재미없긴 했지만 매 순간순간이 들떴다. 하루를 보내고 남은 시간을 게임을 하는 데 보내는 게 아니라 게임을 하기 위해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매력적이었던 체험판에 비해 본편은 아쉬운 점이 눈에 밟혔는데, 시스템상의 불편한 점을 짚자면 우선 그래픽이다. 체험판에서는 폐공장만 나와서 크게 느끼지는 못했지만, 본편에서 본격적으로 지역을 탐험하게 되면서 뿌옇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어딜 가도 이상하게 희뿌연 느낌이 서려 있다. 니어 오토마타의 세계는 항상 '박무'였다. 이러한 박무는 맵에도 드리워져 있는 듯하다. 안개가 낀 듯 지도를 보고서도 해당 지역에 찾아갈 수가 없다. 아날로그 스틱으로 입체로 돌려야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이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니어 오토마타의 아이덴티티라 생각하는지, 작중 NPC에게 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 불만이 있기는 하지만 맵 작성 과정상 어쩔 수가 없다면서 이해하라는 식의 제작자의 메타적 서술이 나오는데 굳이 작중의 설정을 맵에서까지 살려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또 맵을 최대한으로 축소해보면 구현하고 있는 영역은 많은데도 실제 본편에서 갈 수 있는 영역이 조금밖에 되지 않는다. 허전하다. 거기다 그 좁은 영역 안에서도 오픈 월드라는 말이 무색하게 즐길 거리가 크게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 또 특정 메인퀘스트의 경우에는 오픈 월드라는 이름의 딴 길로 새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고 일직선 진행을 강요하는 부분도 다소 있다. 투명 벽으로 가로막혀 가지 못한 곳이 얼마였던지.
오토세이브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불만은 없다. 게임을 시작하며 오토세이브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경고 문구가 나왔을 땐 다소 겁먹었으나 세이브포인트를 찾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트로피 회수에 지장이 생겨 2회차를 도는 경우가 생기므로 수동저장을 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렇지만 퀵세이브가 메뉴호출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건 다소 불편했다. 메뉴호출에도 이펙트가 들어가 다소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원버튼 오토세이브를 지원했다면 더욱 편리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저장은 액세스 포인트의 일정 반경 내에만 들어가면 가능함에도, 챕터 선택이나 해킹 게임 등은 액세스 포인트에 직접 접근해야 이용 가능한 건 이해가 가진 않는다. 나중에 트로피를 회수하면서 챕터를 오갈 때 느낀 건데, 이미 다 진행했던 내용이라 대화를 듣지 않아도 되는데 대화 중일 때 또한 해당 메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불편했다.
액션은 난이도 탓인지, 조작이 미숙한 건지 후반부에 가서는 단순한 원 버튼 액션이 되는 것 같아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의 글을 보니 단순히 내가 못 하는 것 같다.(ㅠ) 그렇지만 이펙트도 화려하고 도구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모션이 준비되어 있으니 감상하는 재미는 있다. 그런데 일단 장르는 액션 RPG이지만 1회차 이후로는 슈팅 게임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니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 맨 마지막의 악명 높은 슈팅 말고는 크게 어렵지는 않은데, 사람에 따라서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느낌은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난이도를 이지로 변경하면 오토칩을 장비할 수 있어 액션이 어려운 사람도 게임을 즐길 수는 있었지만, 경험치를 쌓기 위해 오토칩을 세팅해보니 모바일 게임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심심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걸 상쇄하고 남는 건 음악이다. 전작 또한 게임은 크게 좋은 평은 못 받아도 음악만큼은 호평을 받았다는데, 니어 오토마타에서도 그 음악은 여전하다. 그렇지만 마음에 드는 음악 중 몇은 전작의 멜로디를 가져온 것이라 아쉽기도 하다. 악기 또한 전자음이 거의 없어 장시간 들어도 지루할지언정 귀가 피로해지지는 않는다. 또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곡을 코러스의 유무와 편곡방식에 따라 다양한 버전으로 준비해두어 맵 안에서의 배경음 전환이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가락의 진행이 초기화되지 않으면서 곡의 종류만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단 맵과 맵 사이의 전환은 크로스페이드로 이루어진다. 음악은 게임 내에서도 들을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영역을 벗어나면 못 듣기 때문에 아예 아틀리에 시리즈처럼 배경음을 바꿀 수 있게 해 주는 기능이 있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 차이
언뜻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두 가지 이야깃거리를 제시하는데, 플롯이 이것들을 적절하게 섞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전반부(1~2회차)까지 다루었던 - 인공지능과 관련해서 여러 미디어가 다루어왔던 - '과연 기계 생명체에게 감정은 있는가'라는 문제가 후반부(3회차~)에서 급변하는 상황과 그에 따라 짙어진 특정 인물의 감정선에 밀려 온데간데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급격한 분위기 차이와 맞물려 이 둘이 더욱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는 모두 특정 시스템의 결과물로 딱히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고자 함은 아니다. 단지 감춰진 진실의 폭로를 위하여 준비된 단서 중 일부이자 동시에 인간에 대해 갈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요소이다.
한편 엔딩은 확언을 피하고 희망의 여지만 남겨두어 다소 찜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영상 연출, 조작 연출, 그리고 장면에 적절한 음악 삽입이 조화를 이루어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에 몰입하게 만들었으니, 게임의 목적 중 하나인 즐거움은 일단 달성한 게 아닌가 싶다.
서브 퀘스트라는 타이틀을 달긴 하지만 본편과 관련이 있는 내용도 존재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니어 오토마타에도 서브 퀘스트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타이틀은 서브퀘스트임에도 본편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이 존재하므로 - 어떤 건 컷씬까지 존재한다 - 꼭 봐두는 게 좋다. (기억상실, 에밀의 추억, 동포들의 행방, 에밀의 결의 정도) 그 밖에도 서브퀘스트란 이름이 붙었지만 클리어하면 게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으니 다소 루즈해지는 2회차에 몇 개 정도 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건 서브 퀘스트나 아카이브 등에서 관련 설정을 조금씩 실어주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플레이어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들을 모두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항간에는 게임 말고도 설정집이라던가 다른 여러 가지 미디어 매체들을 통해서야만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애초에 미디어믹스 기획이 아닌 이상은 게임은 게임 하나만으로 완결되는 게 옳다고 본다. 설정집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비화로도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