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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게임

루프란의 지하미궁과 마녀의 여단

by *새벽하늘 2016. 11. 19.


루프란의 지하미궁과 마녀의 여단  HP

니폰이치 소프트웨어


 '좋아하는 장르의 게임은 아니지만, 평이 좋아서 시작한 게임'에는 항상 고통이 따른다. 게임이 잘 만들어지고 아니고를 떠나 장르 특유의 진행방식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게임 또한 내가 지독히 싫어하는 던전탐색 RPG이지만, 현지 평이 워낙 좋고, 한국어화까지 된다고 하니 예약판매 날짜까지 체크해가며 처음으로 예약구매를 한 작품이기도 하다. (오딘스피어는 생각도 않다가 아는 분의 도움으로 예약분을 구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르의 취향 차를 이겨내면서까지 해볼 게임은 아니었다.


 게임은 어렵다. 난이도는 쉬움, 보통, 어려움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중간 던전부터 보스 때문에 이야기 진행이 막혀서 난이도를 쉬움으로 변경했음에도 굉장히 어려웠다. 여기에는 아마 전략을 짜기 싫어하는 내 성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2회차에 진입하지 않아도 게임 내의 모든 콘텐츠를 전부 즐길 수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캐릭터 커스텀의 자유도는 높은 편에 속한다


 게임은 큰 이야기 줄기 속에서 중간중간 소목표가 발생하고, 이를 기준으로 던전 탐색이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플레이어는 책이라 움직일 수 없으므로, 대신 던전을 탐색할 인형병(캐릭터)을 생성해야 한다. 그런데 캐릭터 커스텀의 범위가 상당히 넓은 편이라 캐릭터 생성 시 상당히 고민하게 된다. 전투에 영향을 주는 요소만 보자면 패싯(직업), 성격, 성장 경향, 공격성향이 있는데, 외적인 요소도 고려한다면 커스텀의 범위는 앞에서 언급한 것에 성별, 외모, 이름 등이 추가되어 훨씬 넓어진다. 처음에는 공들여서 캐릭터를 생성했지만, 다수의 인형병이 필요해지는 게임 특성상 나중에 가서는 인형병을 대충 생성하게 되는 건 괜스레 슬프다. 


 캐릭터를 생성하면 이제 파티를 짜야 하는데, 이 파티를 루프란의 지하미궁과 마녀의 여단(이하 루프란)에서는 커븐(coven)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커븐을 총칭하는 것이 바로 여단(旅団)이다. 각 커븐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캐릭터(어택커)가 최대 3명에 서포터가 최대 5명 참여할 수 있는데, 팀을 5팀까지 편성할 수 있으니 여단에는 최대 40명의 캐릭터가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커븐은 결혼서(結魂書)를 단위로 묶이게 되는데, 결혼서에 따라 각 포지션당 어택커의 능력치 및 경험치 배율에 변화가 생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게임은 도남(흔히들 '스킬'이라고 부르는 것)이 캐릭터에게 고유기술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고, 결혼서에 딸려오기 때문에 결혼서의 효과 및 도남의 종류를 잘 보고 커븐 및 여단을 조직해야 한다. 


 이제 여기까지 완료하면 끝인가 싶은데 애석하게도 끝이 아니다. 맨손으로 출정할 수는 없으니 좋은 무기를 쥐여줘야 한다. 당연하게도(?) 기본 습득 무기 외에도 연금합성을 통해 무기강화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무기의 사정거리와 진형별 효과를 고려하여 커븐별 선후위도 정하고, 어택커를 바꾸기도 해야 하는 등 굉장히 생각해야 하는 점이 많다. 아직 던전의 '던' 자도 보지 못했음에도 본격적인 던전 탐사 전부터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으니 오히려 진이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높은 자유도는 보스의 공격패턴을 분석한 후 여단을 조직하는 전략적 재미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게 되려 머리 아프고 귀찮았다. 


고통의 길 찾기


 고통 속에서 캐릭터의 장비 세팅까지 마친 후에는 이제 염원하던 던전을 탐색하러 떠나야 한다. PV에서도 강조했지만, 루프란에서는 던전 탐색에서 누구나가 생각했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벽 부수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벽을 부수는 데는 비용이 필요해서 무한정 파괴할 수도 없는 데다, 또 파괴된 벽은 거점에 돌아오면 원상복귀 되기 때문에 생각만큼 만능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도리어 이런 시스템을 이용하여 벽과 벽 사이에 레어도가 높은 보물을 집어넣는 등 되려 이것이 던전의 까다로움을 증대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여 나중에는 그냥 맵을 보고 게임을 진행했다. 당연하지만 벽을 부숴 출구까지 진행하는 정신 나간 진행은 할 수 없다.


다소 지루했던 전투


 하지만 여단을 조직하기 위해 들인 품에 비해 전투는 다소 지루하다. 이는 캐릭터의 DP(도남 포인트, 흔히 MP라고 부르는 것)가 아이템으로 회복될 수 없어서 대부분이 통상공격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데다 전투의 속도는 다소 느려서 시종일관 R트리거를 눌러야 하는 것도 불만이었다. 적이 요즘 유행하는 Live2D가 적용되었는지 살랑살랑 움직이기는 하지만, 전투는 눈요기가 전부가 아니니 지루함은 덜어지지 않는다. 그 와중 다행인 것은, 경험치 이월 - 이월횟수가 거듭될수록 경험치 배율이 증가하는 기능 - 이란 기능이 있어 고통은 다소 덜어진다. 이는 게임 후반부에서 거의 필수적인 '이혼술' - 캐릭터의 아니마 순도(기본능력치 상승에 관여하는 요소)를 높이는 대신 레벨 1부터 다시 육성하는 기능 - 에서도 유용하게 작용한다. 


이야기는 유쾌함와 폭력성, 선정성이 공존한다


 이야기는 소프트 겉면에 15세라는 등급과 함께 나와 있는데, 폭력성 및 선정성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초반부에는 일상 속 해프닝을 그려내어 유쾌하지만, 후반부에 돌입하면 '진실'에 진입함에 따라 분위기 또한 무거워지면서 동시에 선정성과 폭력성, 그중 선정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 선정성의 정도 자체는 높지는 않지만, 그 원인이 여성끼리의 동성애 묘사라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전부 이러한 요소로 점철된 것은 아니며, 군데군데 감동적인 부분도 나온다. 엔딩 또한 이러한 잔혹 동화 같은 분위기와는 별개로 평범한 편이다. 


 사실 초반에는 던전을 탐색하면서 요로역정, 즉 플레이어가 접하게 되는 사실과 소목표 달성 후 진행되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다소 의아해했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평행선을 달리는 듯했던 두 개의 이야기에 접점이 생기면서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이야기 초반부에서 깔아둔 복선과 함께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은 플레이어를 게임에서 좀처럼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 복선은 던전에도 깔려있는데, 특정 보물상자를 여는 '어떤 열쇠'이다. 이 열쇠는 이야기 마지막 즈음에 가서 얻게 되기 때문에, 게임 초중반부에는 항상 보물상자를 열려고 하면 [이 보물상자를 열기 위해서는 '해당 열쇠의 이름'이 필요하다]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서 '어떤 열쇠'의 이름이 공연히 플레이어의 뇌리에 박히게 된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열쇠의 이름이 이야기 마지막에 와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로 기능하여 감탄했다. 플레이어가 던전을 탐색하며 보았던 이름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게 되어 전혀 낯설지가 않고, 또 이를 통해 비로소 플레이어가 탐색한 던전과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중요 아이템을 복선의 하나로써 이용한 것과는 반대로, 던전에서 종종 마주치는 주민들의 이야기 및 어떤 사람이 남긴 한 줄 기록(?)에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플레이어의 상상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점이 다소 아쉬웠다. 이건 루프란 시의 주민들의 마지막 모습 또한 그랬다. 멸망을 앞두고 그들은 왜 뜬금없는 고백을 했을까? 그러한 행위 자체로 멸망의 분위기는 살아났을지 모르지만 '왜'에 해당하는 부분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내용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루프란의 지하미궁과 마녀의 여단' 내 등장인물 관계의 스펙트럼도 '알고 보니 다들 아는 사람이었다' 수준으로 굉장히 좁은 편이다.


 엔딩은 두 개가 존재하지만, 다행히도 1회차에서 모두 회수할 수 있다. 단지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히든 보스들을 처치하면 얻는 아이템 6개를 전부 소지한 상태로 이야기상 최종 보스를 처치하면 무조건 진엔딩이 나오고 엑스트라 던전이 해방되므로, 노멀엔딩을 보고 싶다면 보스 6명 중 5명을 처치한 상태에서 일단 세이브 파일을 만들어야 한다. 플래티넘까지 걸린 시간은 대강 78시간 정도. 


 시스템은 크게 불편한 건 없었지만, 다음과 같은 점이 아쉬웠다.

 - 여단 편성 시 결혼서에 있는 도남을 바로 확인하지 못함

 - 전투 중 패전이 확실함에도 강제종료하는 기능이 없음  

 - 빨리 감기를 하기 위해서는 R트리거를 시종일관 눌러야 함  

 - 세이브 파일을 불러오려면 타이틀로 돌아가 다시 불러와야 함  

 - 대화 로그 보기를 따로 지원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