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딘스피어: 레이브스라시르 1HP
Vanillaware
북유럽신화는 우리가 어릴 적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와는 달리 '라그나로크'라는, 신들의 황혼이라는 멸망이 존재한다. 그리고 북유럽신화를 참고로 하는 오딘스피어: 레이브스라시르 또한 라그나로크의 위치에 해당하는 종말이 '에리온 서사시'로 전해진다. 언젠간 멸망한다는 그 말은 등장 인물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고, 그 결과 현재 오딘스피어에서 다루는 대륙 간의 혼란을 불러오게 되었다.
게임은 이렇듯 혼란스런 세계를 사는 다섯 명 - 그웬돌린, 코르넬리우스, 메르세데스, 오스왈드, 벨벳 - 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다섯 명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지 않고, 다섯 명 각각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사연을 다루고 있다. 같은 시간 축을 다섯 번이나 반복하게 되는 셈이다. 개중 중요한 사건의 경우는 여러 등장 인물의 이야기에서 다루어지게 되지만, 등장 인물의 사고 회로가 다르다 보니 지루하다기보다는 다양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장점과는 반대로 등장 인물 외에도 비중 있게 다뤄지는 캐릭터 - 오다인 왕, 발렌타인 왕 등 - 에 대한 서술은 부족하여 아쉬웠다. 특히 오다인 왕은 종언을 피하고자 드워프들을 시켜 현존 최강/최대의 사이퍼인 바롤을 만들었음에도 왜 장녀 그리젤다를 보고서는 여태까지의 노력이 허망할 정도로 쉽게 죽음을 받아들였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그리고 이 다섯 명의 이야기를 다 읽으면 - 작중에서는 언급만 있었던 - 비로소 에리온 서사시에 나오는 '종언'이 도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에리온 서사시에 나오는 5가지 재앙에 도전할 캐릭터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보통이라면 단순히 게임 내의 예언은 예언이라는 명사를 단 알 수 없는 글일 뿐, 이를 푸는 것과 타개하는 것 모두 작중의 인물이라 플레이어는 방관자로 기능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플레이어가 직접 예언을 해석하여 도전할 캐릭터를 알맞게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멸망하는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듯 예언을 해석하고, 또 캐릭터를 조작하여 재앙을 타개하는 과정에서 흡사 차원을 넘어 내가 직접 그들을 종언에서 구해낸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비록 나는 트로피를 빨리 따고자 처음부터 정답을 보고 시작하긴 했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예언을 해석했다면 이 느낌이 더욱 크게 와 닿았을 것 같다.
사실 RPG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후반부로 갈수록 요구하는 노가다량이 급격하게 증가해서 초반부와 달리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 진행속도는 점점 더뎌지는데, 이 또한 이 게임에서는 '요리'를 먹음으로써 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의미 없는 경험치 쌓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정말 환영할 부분이다. 난이도 또한 초반엔 스위트, 노멀, 엑스퍼트인데, 노멀로 해도 적당히 어려워서 조금만 노력하면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라 좋았다. 그리고 어려우면 중간에 난이도 변경도 가능하다. 혹 엑스퍼트 난이도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2회차에 개방되는 메뉴인 XTRA NEW GAME 모드가 마련되어 있으니 그쪽을 이용하자.
그렇지만 이 게임이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같은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전투에서는 순서만 다를 뿐 등장하는 맵과 몬스터가 온전히 겹치게 되는데, 아무리 조작 캐릭터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같은 몬스터를 5번이나 상대한다는 건 고역이었다.
한편 이 게임은 2007년 PS2로 나온 동명 게임의 리파인버전이다. 듣기로는 스킬도 많이 추가되고, 전투도 속도감 있게 바뀌는 등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향수라는 게 있어서 아무리 예전 게임이 별로라 하더라도 어지간히 별로인 게 아니라면 개선 전의 것도 약간은 그립기 마련인데, 그러한 유저의 마음을 꿰뚫듯이 메뉴에는 새로 개선한 버전의 게임뿐 아니라 예전 버전의 게임도 즐길 수 있도록 클래식 모드라는 걸 따로 마련해놓고 있다. 하지만 게임성을 갈아엎는 데 이렇게 큰 공을 들여놓고서는, 대사량이 적지 않은 게임에서 메시지 로그 기능을 추가하지 않은 건 약간 아쉽다.
- 레이브스라시르라는 단어는 '생명을 잇는 자'라는 의미로, 라그나로크에서 살아 남은 남녀 한 쌍 중 한쪽을 가리키는 Lifthrasir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http://atlus-vanillaware.jp/osl/news/444/)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