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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게임

완다와 거상

by *새벽하늘 2020. 3. 27.

 완다와 거상은 보스전만 있는 게임이다. 아무것도 없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보스에게 간다. 무기와 활뿐인 장비는 내 앞의 상대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공략'을 위한 것이다. 게임은 액션인 듯하면서 본질적인 부분에선 퍼즐이다. 그렇지만 이 독특함을 조작감이 망친다. 말 이름은 아그로인데 어그로꾼이 따로 없으며, 이상적인 카메라워크가 정해져 있어서 플레이어가 임의로 카메라를 돌리면 다시 돌아가는데 처음에 이걸 몰라서 엄청난 멀미를 일으켰다. 

 그러나 고통 속에서 꾸역꾸역 플레이함으로써 다시 보인 부분도 있었다. 오프닝 영상과 엔딩의 연결, [최대 체력, 악력 세팅 → 비밀정원, 금단의 과일→ 금단의 땅 건너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트로피 설계. 거의 모든 플레이어에게도 마지막 트로피가 됐을 이 금단의 땅 건너기에서는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아무 배경음이 없는데, 다리를 건널 뿐일 그 몇 분 동안 여태까지의 고생이 스쳐 지나가며 추억으로 미화되어가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모든 것은 자신이 구축한 세계를 플레이어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의도가 뚜렷한 나머지 플레이어의 욕구와 충돌한 결과라는 걸 느낀다. 옛날에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애니메이션에서 나가토 유키가 겪은 무한의 '오늘'을 플레이어에게도 몇 주나 보여주며 똑같은 마음을 맛보게 했던 엔들리스 에이트 때처럼, 취지는 좋아도 적당한 절충이 없는 이상 플레이어의 호불호가 갈리는 건 당연한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