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sassin's Creed Origins HP
Ubisoft
뒤엎는다는 건 중력을 거슬러 밑에 있던 것을 위로 옮길 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할 뿐이지만, 대상이 지금 사는 사회의 통념, 구조, 권력층이라면 필요한 자원은 많아진다. 조건에 따라 가능성은 널뛰지만 중요한 건 퍼센티지보다는 그걸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다. 우리는 의무교육을 통해 간접적으로 이 사실을 안다. 바야흐로 문자로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뒤엎는다는 행위는 무수했다. 하늘 아래 똑같은 사람이,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서부터 충돌은 이미 예견된 거였다. 권력 구조의 발생은 필연적으로 저항을 불렀다.
앞선 자들이 투쟁을 통해 길을 잘 닦아준 덕분에 난 오늘도 이렇게 무사히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 준 그들 또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고 역사서에 적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처음이 어렵다는 말처럼 계기를 촉발시킨 자들과 과도기에 있던 자들의 삶은 황폐해진 경우를 종종 본다. 전체적으로는 역사적 의미가 있니, 숭고한 행동이니 하는 의미를 부여하지만 말이다. 딜레마다. 전체냐? 개인이냐? 무 자르듯 하나가 중요하다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는 만큼 다 때려치우고 네 삶을 챙기라고도 말해줄 수만도 없다.
Assassin's Creed Origins(이하 어쌔신 크리드 오리진)의 주인공인 '바예크'와 '아야'가 바로 그런 자들이었다. 목적은 죽은 아들의 복수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고대 이집트의 부패한 권력층들을 제거하게 된다. 그리고 끝에는 시리즈를 통틀어 수많은 사람을 구해줄 암살단의 신조가 제창되며 형제단이 설립된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어떤가? 그들은 마치 주말부부인 것처럼 자신과 서로의 배우자를 챙기는 등 산뜻한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 중후반부터 관계는 비틀리기 시작한다.
일그러짐은 대의를 위한 길을 걷는다는 것에 대한 내적 갈등을 이야기의 양대 주인공으로 표현했기 때문인 걸로 보인다. 조작하는 시간을 보았을 때 실제적 주인공인 바예크는 게임 전반에 걸쳐 대의와 동시에 아들 상실의 아픔도 그려야 했기 때문에 게임 중후반까지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이루고 싶은 소망을 드러낸다. 반대로 아야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주박에서 더욱 빨리 벗어나 넓은 시야로 대의를 위한 행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인물상이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자신의 행동을 묶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바예크에게 이별을 고하는데, 결국은 가족과 사랑이라는 정서적 가치가 대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머리는 이해하는데 역시 마음은 아프다. 바예크가 실질적 주인공인 이상 그가 암살단의 원형을 제창한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 또한 대의를 위한 길을 걷게 되지만 마지막까지도 동반자를 갈구했던 그의 삶이 밝은색으로 이루어질 것이 아님은 너무나 뻔하다.
편하게 산다는 걸 굳이 포기하고 힘든 삶을 살아간다는 건 쉽게 내릴 수가 없다. 연결된 사회적 관계가 많을수록 언젠가 져야 할 잠정적 페널티도 늘어난다. 그냥 나 한 몸 잘 건사하게 생을 마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앞선 자들이 행복한 삶이라는 평생의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일궈온 사회를 마찬가지로 뒷사람에게 건네주는 것이 모든 이가 지고 있는 짐이다. 범인인 나는 이들처럼 나를 오롯이 홀로 만들면서까지 행동하지는 못하겠지만, 소시민들의 의지를 대표해 활동하는 자들에 대해 끝없는 연대와 지지를 보내 그들의 힘이 되어주는 것이 엑스트라에 불과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선두에서 고생하고 있는 자들에 대한 끊없는 감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