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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게임

L.A.Noire

by *새벽하늘 2018. 3. 3.


L.A.Noire  HP

Team Bondi


 L.A.Noire는 썩 잘 만들어진 디오라마를 그 시대의 음악을 사용해 공감각적으로 마감한 게임이다. 단순히 개발이 덜 된 시골 풍경 중 하나로 비칠 뿐인, 그러나 시대를 생각해보면 사실은 기술적으로 앞서있던 로스앤젤레스의 거리. 하지만 기술 발전에는 전혀 못 미치는 전근대적 사고 - 유색인종(주로 흑인)에 대한 차별, 냉전,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부적응, 재개발 열풍 등 -. 그리고 게임을 전개하기 위해 인간의 복잡 다양한 면 중 특정 요소만 추출한 편의적 캐릭터메이킹이 아닌, 완벽하진 않지만 입체적으로 만들어진 인물상. 실제적인 표정 연기. 잘 재현된 것끼리의 조화로 게임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범죄 스릴러 어드벤처의 세계를 수행하는 주인공인 콜 펠프스는 경찰서 각 분과를 옮겨 다니며 여러 가지 사건을 해결한다. 그렇지만 항상 올바를 줄만 알았던 경찰서 또한 거물이 얽히는 사건에 한해서는 사건을 무력화시키고, 미제사건의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어떻게든 범죄자로 내세울 만한 대체재를 찾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실제 게임 내에서도 범행을 일으킨 장본인을 특정지었느냐는 게임에서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진범보다는 상사의 입맛에 맞는(주로 정치적 신념에 맞지 않는 공산주의자들) 범인을 내세우는 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도 있어서 사회의 쓴맛만 가득 본다. 

 

 이야기 중반을 넘어서면 경찰서에서 정치적 스캔들이 터지게 되는데, 여기서 윗선은 주인공을 버림 패로 철저히 이용하게 된다. 이야기 사이사이에 삽입된, 그러나 이야기와는 관계없을 거로 생각한 전(戰)시 주인공의 행보와 신문을 통해 간간히 전해 듣는 퇴역군인들의 생활상이 이 즈음하여 이야기에 자연스레 간섭하기 시작한다. 하루아침에 좌천된 콜 펠프스는 약물/성범죄과에서 느꼈던 미심쩍음과 자신을 좌천시킨 것에 대한 분노를 동력으로 재개발 사업에 감춰진 비리를 조사하기에 이른다.


 소수의 인원으로 권력에 도전하는 건 무모함에 가깝지만 결국 전모는 밝혀진다. 그렇지만 현실을 너무 잘 따른 나머지 사건은 도마뱀 꼬리 자르기마냥 마무리되고 자신의 전력을 세탁한 주모자들은 마지막엔 아무것도 아닌 듯 뻔뻔하게 등장해 분노만 불러일으킨다. 정말 세계 역사는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나선계단을 내려오듯이 같은 궤도를 규모를 달리하여 반복한다 느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높은 자들의 사정'에 의한 부조리는 여전하다. 기술은 발전해도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크게 변함이 없다. 단순히 예의라는 겉치레를 통해 자신의 이기심을 능숙하게 숨기는 기술만 늘었을 뿐이었다.


 게임은 다양한 플레이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오픈 월드 위에 세워져서 이야기 외에도 즐길 거리가 많아 보이지만, 콘텐츠는 단순히 플레이타임을 늘리는 데 일조할 뿐인 수집요소에, 이야기를 즐기기엔 빈약하고 재미를 추구하기에도 부족한 노상범죄로만 점철되어있다. 또 제작사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워낙 명확하기 때문에 오픈 월드라는 간판이 무색하게도 게임의 접근 방식은 상당히 제한된다. 게임을 하는 목적 중 하나인 자극 또한 어드벤처라는 장르의 특성과 이야기 중심이라는 성향에 힘입어 한없이 낮아진다. 거리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없으며 그들의 세계에 간섭할 수도 없다. 가장 신나는 총격전은 특정 장면에서만 기능한다. 모든 것은 플레이어의 의지가 아닌 전적인 게임의 의지에 달린 거라 역동성이 목적이라면 절대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다. 게임의 모든 요소는 사실 이야기를 감상하기 위한 부차적 요소다. 


 그래픽은 전 세대의 게임을 UHD로 단순 업스케일링해 이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현세대에서 보기에 텍스처가 썩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뛰어난 자연풍광이 있는 것도 아니며, 역사적 장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앞에 있는 건 한창 개발 중인, 발전하려고 폼을 잡는 어정쩡한 로스앤젤레스가 있을 뿐이다.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기꺼이 집어 들 만하지만 '조작'을 목적으로 이 게임을 고른다면 글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주인공이 되기 위한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정의의 사도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결점이 있는 인물이란 것도 사실 미묘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