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거나 밝거나 기묘한 HP
HaccaWorks*
이 서클의 전작을 굉장히 좋아했다. 차기작에 관심 가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지만 정식 제작사가 아닌 동인 서클이니만큼 발매일은 차일피일 늦어졌고 그렇게 기억에 잊혀갔다. 나중에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든 건 발매된 지 한참이 지난 후였다. 시기가 지난 뒤에 게임을 하자고 마음먹는 건 참 어렵다. 해보려고 했지만, 초반만 보고 끈 지가 도대체 몇 번인지. 이러다가는 영원히 클리어하지 못하겠다 싶어 와치독2를 끝내고 난 후 집중해서 빠르게 게임을 클리어했다. 생각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식사를 시작하자'는 캐치프레이즈만 머릿속에 넣고 게임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식사의 주체는 요괴(あやかし)고, 그들에게 있어 음식은 인간이다. 그것도 단순한 인간이 아닌 좋아하는 사람이다. 여기까지 보고서는 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그를 식사해야 한다는 사실에 갈등하고 고뇌하며,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는 절망적인 전개를 기대했다. 아마도 전작의 그림자가 내 머릿속에 드리워진 탓이 아닐까 싶다.
식사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긴 하지만 주체에게 있어서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인 유에에게 식사는 강제이다. 이는 그의 기구한 운명에서 비롯된다. 어느 신이 우츠와 시(市)를 요괴가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결과 혼만 남아 버렸는데, 이를 담기 위한 그릇이 바로 유에였던 것이다. 그리고 유에와 같은 존재는 과거에도 존재했으며 미래에도 수없이 존재할 것이다.
이들은 존재는 하지만 신의 혼을 담은 도구-그릇으로 기능한다. 오롯이 그들 자신으로서 존재한 적이 일생 중 거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음에도 인생에서 자신은 주변인으로밖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에에게도,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마도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인연이 생긴다. 그것이 설사 우호적인 인연이 아니라도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태생이 태생인지라 중요한 순간에도 확실한 의사표명을 하지 않고 하는 순간에도 반응이 엷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대상이 유에의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태도가 초반보다는 적극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이는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이러한 유에의 소극적 태도는 이야기를 극적으로 끌어가는 데는 사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성격도 성격이지만 식사라는 소재 또한 충분히 인물 간의 갈등을 일으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부환경에 의해 해결 혹은 무산된 경우가 많아 내적갈등 없이 싱겁게 끝나버린 면이 없잖아 있다. 여러모로 나에게는 기대와 어긋나 아쉬웠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