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S;CHILD HP
5pb
게임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이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은 현실과 전혀 관계없는...'과 같은 주의사항 문구를 본다. 이 문구는 게임이 픽션임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픽션에 현실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픽션은 허구 속에 현실을 담았다. CHAOS;CHILD(이하 카오스차일드)의 전작인 CHAOS;HEAD(이하 카오스헤드)의 주인공인 니시죠 타쿠미가 바로 그런 현실적인 인간상이었다. 잔인한 현실에 손조차 써볼 수 없는 무력한 인간을 잘 드러냈다. 속된 말로 찌질함 그 자체였지만, 우리 또한 같은 상황이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단 보장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행동할 여지가 다분하다. 그렇지만 게임을 하면서 마음은 내내 불편했다.
문제는 역시 과도한 현실 반영이었다. 우리는 픽션에서 현실성을 추구하지만 동시에 이상을 추구한다. 이율배반적이다. 다시금 적지만 그의 반응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응당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찌질함과 비겁함이라는 현실은 아름답지가 않다. 즐겁자고 보는 픽션인데, 이왕이면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이리라. 그래서 적당히 현실적이면서도, 적당히 이상적인 본작의 주인공인 미야시로 타쿠루의 이야기에 나는 카오스헤드보다는 훨씬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미야시로 타쿠루가 전작 카오스헤드의 중심사건을 모방한듯한 일련의 연속적 엽기살인사건 '뉴 제너레이션 광기의 재래'를 흥미본위로 쫓으면서 전개된다. 누가 망상 과학 시리즈 아니랄까 봐 전작인 카오스헤드에서 쓰인 '디소드', '디럭의 바다', '기가로매니악스' 등의 알 수 없는 용어가 속속들이 등장하지만, 전작을 미리 플레이하고, 또 본편의 설명 또한 전작보다 훨씬 단순명료하고 알기 쉬워져 이야기를 읽는 데 어려움이 없다. 또 주인공은 사건을 쫓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 나름대로 추리도 하게 되는데, 추리 과정 또한 독자가 따라갈 수 있을 정도라 흥미를 돋우기 쉽다. (바꿔 말하면 추리라고도 할 것 없을 정도로 단순하다는 소리가 되지만, 애초에 추리게임도 아니니 이 부분은 넘어가자) 추리게임이 아닌 경우 플레이어를 주인공의 분신이라고는 생각지 않아, 시나리오상에 단서도 던져주지 않고서는 결말에서는 이야기에는 제시되지 않은 근거를 들어 범인을 특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여기서는 그렇지도 않아 결말에 납득하기는 쉽다.
당연한 수순으로 게임은 중심 사건 '뉴제너레이션 광기의 재래'의 범인들을 막는 것으로 끝이 난다. 계획범에게는 단죄를 내리고, 계획범이자 실행범인 공범에게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다는 의미로 새 삶을 부여한다. 그리고 트루루트에서는 그렇게 새 삶을 살게 된 그 사람의 이야기와 본편의 진실이 드러난다. 왜 1회차에서는 게임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카오스차일드 증후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지, 그리고 엔딩에서 밝혀지지 않은 사소한 의문점마저도 트루엔딩에서 깨끗이 회수된다. (연출만을 위한 것이 일부 있기는 하다) '위원회'의 간부인 와쿠이 슈이치와 외부적인 갈등이 있지만, 주인공 그 자신을 내기에 걺으로써 미봉책이나마 사건을 해결한다. 그렇지만 완전한 해결은 아니라 뒷맛이 좋지는 못하다.
억지 해피엔딩보다는 현실성 있는 결말을 원한다고 항상 외쳤지만서도, 역시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니 역시 해피엔딩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참 웃겼다. 트루엔딩에서 비로소 조명되는 '그 캐릭터'가 참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기억을 떠올릴 듯 떠올릴 듯하지만 기적은 없이 기억의 편린만을 보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마지막에 와서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마음이 아팠다. 서로를 위해서, 세계를 위해서는 그러는 게 좋았다고 주인공은 생각하면서 씁쓸하게 끝이 난다. 물론 나는 엔딩이 마음에 안 든다. 뒷맛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해는 하지만 대국적인 시각으로 본 나머지 상대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만을 밀어붙인 게 다소 강압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주 이야기가 좋다고 해도 이야기 간의 공간은 필연적으로 비게 마련인데, 이를 채우는 일상파트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초반의 이야기 중 하나인 학원제 또한 낯선 이와의 소통이 서툴렀던 주인공이 친구들을 억지로나마 돕게 되면서 점차 그들과 친해지는 점은 주인공이 성장한듯해 뿌듯한 느낌이 들며, 친구들과의 대화는 즐거움이 넘친다. 단지 그 재미에 기여한 부분 중 하나인 '망상트리거'에서 온 게 대부분인데, 이게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야기의 흐름을 깨고 있는 게 단점이긴 하다.
계속 말하고 있지만, 카오스차일드는 카오스헤드의 후속작이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후속작 격 작품이라고 해도 설정과 시스템을 계승한 아예 다른 작품으로 만들 수도 있을 텐데, 등장인물의 이야기 내 포지션, 캐릭터 성, 주인공과 특정 캐릭터 간의 관계 모든 것에서 어딘지 모르게 전작과 비슷한 점은 아쉽다. 말이다. 전작을 플레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작과 연결시켜 생각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쉬운 점도 물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는 잘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 간의 협업도 매우 뛰어나다. 긴박한 상황에 맞이하면 항상 나오는 'PEAK LEVEL'은 분위기를 고조시켜주는 데 일조했다. 디소드의 디자인도 잘 되었지만, 전투가 단지 빛의 궤적만으로 처리하고 끝이 나는 건 아쉽기는 하다. 한편 트루루트에서 히카리오의 조명에서 엔딩영상으로 이어지는 연출은 두말할 것 없는 백미. 글을 쓰는 실력이 좋지 못해 이야기의 감동을 전할 방도가 전혀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게임 외적으로는 출력폰트의 크기가 작아 다소 불편했다. 일본어의 후리가나와 같은 게 조금씩 나오는데 그런 글자의 경우 문맥으로 어떤 글자인지 알아맞출 뿐이지 알아보기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