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raway HP
Media Molecule
플레이어를 게임 속 일원으로 참여시키는 게임은 많다. 메타개념을 이용해 플레이어의 세계 또한 게임의 한 부분으로 취급하려는 시도도 많아지고 있다. 시도는 인정하지만,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와 닿는 건 거의 없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달랐다. 과장 섞어 내가 손댄 게임 중 게임의 구성원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게임이었다.
Tearaway(이하 테어어웨이)은 플레이어를 신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게임 속 주민들은 플레이어를 신으로 추앙한다. 그러나 분명 나중에 가서는 신은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게임은 여타 다른 게임들이 그렇듯이 게임 속의 등장인물들이 이끌어 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게임은 끊임없이 신, 즉 우리를 게임 속으로 불러들였다. 비록 그 수단의 대부분이 전면카메라를 이용한 것이라 부담스러웠지만 말이다. 하지만 - 부담스럽긴 하지만 - 사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나올 때 가장 주의가 집중되기 마련이다. 어린이의 주의를 끌려면 어린이 주위의 세계를 끌어올 필요가 있다. 흔히 어른은 어린이보다 집중력이 좋다는 이유로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건 어른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친구, 그들이 사는 곳, 그들 자신에 대한 정보가 나올 때 딴 일을 하다가도 귀가 솔깃해진다. 이 게임은 이렇듯 사람이 콘텐츠에 몰입하게 만드는 원리를 잘 알고 있었다.
게임은 끊임없이 플레이어를 언급하여 게임 속 일원으로 끌어들인다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게임은 이 원리를 철저히 지킨다. '너'와 '나'의 이야기라며 나오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남긴 발자취를 되짚을 때도 게임은 플레이어를 참여시킨다. 그럼으로써 이 발자취는 단순히 메신저가 게임상에서 이렇게, 이만큼 행동했다는 단순 기록을 넘어 이 기록이 '그들이 <나>와 함께 남긴 기록'이 된다. 플레이어 또한 그들과 게임을 함께 여행해가는 일원이었다고 말이다. 증강현실을 이용하여 그들이 우리의 현실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연출하는 마무리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 개입한다 해도, 카메라로 얼굴을 비추는 것을 제외하면 어차피 버튼 조작일뿐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테어어웨이는 내가 아는 한 여태껏 나온 게임 중 비타의 기능을 가장 충실히 활용하고 있는 - 비타에 내장된 웰컴파크는 제외한다 - 게임이다. 터치, 목소리, 중력 센서, 카메라,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버튼 조작까지. 비타에 내장된 기능을 거의 전부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플레이어는 게임 속 등장인물과 소통한다. 왕관을 요구하는 다람쥐에게 플레이어가 직접 색종이를 잘라 왕관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팝업북을 펼치듯이 맵을 바꿀 수도 있다. 그들의 세계에 우리가 만든 눈을 내리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세계에서는 페이퍼크래프트를 만들어 현실에 구현화시키는 것으로 우리와 교류한다. 이 형태는 비록 완전한 쌍방향 소통은 아니지만 - 시나리오에 의한 계획적 소통이기 때문이다 - ,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개입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호교류가 된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사실 지금에서야 억지 시도가 줄기는 했지만, 비타가 발매되고 몇 년간은 비타의 기능을 사용했다면서 홍보한 게임이 몇 있었다. 대부분은 후면 터치였던가. 하지만 그러한 기능은 부수적인 위치이거나 억지로 끼워 넣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테어어웨이는 그러한 기능들을, 억지스러운 느낌 하나 없이 게임에 자연스레 집어넣었다는, 내용 외적인 면에서도 잘 만들어진 게임이다.
파문조차 게임 속 세계에서는 색종이이다
예술적인 면에서도 색종이로 만들어진 세계라는 컨셉에 너무도 충실한 게임 속 세계와 이펙트, 민속악기로 이루어진 배경음악,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는 자연음, 친절한 가이드, 그리고 유저친화적 인터페이스까지. 개인적으로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게임이다. 분량이 살짝 적은 것, 그리고 자동저장형식을 취하고 있어 메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점을 제외하고서는 말이다.
* 이 포스팅은 꿀사과님의 협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