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5 HP
ATLUS
소위 악의 무리가 아니라면 사회적 부조리 타파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러나 가족과 직장 등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자들은 극히 일부이다. 설령 행동했다 한들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은 미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틀린 현실을 인지만 할 뿐이다.
불연소 욕망을 우리는 페르소나5의 세계를 통해 충족시킨다. 사회적 위치, 규약, 고정관념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난 학생을 플레이어로 설정한 것은 행동하지 못하는 자들(사회인, 즉 나 자신)의 대척점에 있단 점에서 의미깊다. 얽힌 것이 크게 없으니 자신의 행동이 미칠 정치적, 사회적 파장도 크게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평범한 사람은 결코 알아챌 수 없는 수법을 사용함으로써, 사회적 신분에서 오는 사고의 자유뿐 아니라 행동의 자유도 보장된다. 당찬 모습으로 여유롭게 악인을 제거하는 모습은 카타르시스를 준다. 혹 성인을 플레이어블 캐릭터로 설정했다면 필연적으로 나왔을 생업, 가족, 가계부양에 관한 기타 자질구레한 묘사도 불필요하다.
괴도단의 행동으로 분명 정의는 실현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들 활동의 핵심인 '개심'은 사실 정의라고 하기에는 불완전하다. 초능력과 오버테크놀로지가 마음껏 등장하는 창작물에서도 창작자인 인간의 도덕적 기준은 그대로 적용되어, 터부시되거나 페널티가 따르는 능력이 존재한다. 마음을 조종하거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인권이나 도덕, 윤리에 어긋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개심이 여기 해당한다. 마음을 바꾸게 하면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은 도리어 두렵다. 아무리 악인이라 할지라도, 정신세계의 강제침입에 의한 개조는 당사자의 인권을 무시한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마인드컨트롤과 같은 선상에 놓고 봐도 무방한 것 아닌가? 유혈이 낭자한 게임을 할 때 느꼈던 것과 같은, 반인륜적 소지가 있는 콘텐츠에 대한 본질적 거부감이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분명 정의이기에 이걸 정의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악으로 보아야 할지 판단은 사실 혼란스럽다. 마치 데스노트를 처음 접했을 때와 닮았다. 하지만 이야기는 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선악의 대립 구도에 집중한다. 마음에는 걸리지만, 이야기가 이를 다뤄주지 않으니 나 또한 억지로 적응하고 게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개심의 프로세스가 도덕적이든 도덕적이지 않든 이야기는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기치 아래 파죽지세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것도 왜곡된 현상의 중심체와 맞닥뜨리는 후반부에서부터는 전개가 유격이 맞지 않는 케이스를 억지로 끼운 것처럼 어색해진다. 추락 후 상승할 줄 모르는 괴도단의 지지율처럼 말이다. 그나마 연출로 잘 포장했기 때문에 시각적 재미만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다. 컨트롤러를 통한 조작면에서의 아바타(주인공)와 정신적 아바타(무지한 대중들)라는, 플레이어의 이중적 아바타를 통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겠지만, 이야기에 힘을 실은 것에 비해서는 엉성한 마무리였다.
거기다 이야기를 강조하게 되면서 동료들과의 인연과 유대는 상대적으로 전편에 비해 거의 다루어지지 않다시피 한다. 끈끈한 정은 다 옛말이 되었다. 그런 데다 이야기상에서 동료들의 비중 차이도 크니, 특정 캐릭터를 좋아하는 플레이어에게 있어서는 한숨만 푹푹 나올 것 같다. 이야기를 즐기는 나조차 눈에 띌 정도인데 팬은 오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