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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게임

닐 아드미라리의 천칭 제도환혹기담

by *새벽하늘 2016. 8. 28.


닐 아드미라리의 천칭 제도환혹기담  HP

아이디어 팩토리


 이 게임의 시나리오를 맡은 카타기리 유마는 7년 전 발매된 GARNET CRADLE의 시나리오를 맡았다. GARNET CRADLE은 당시 공통루트가 길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와서 이 게임도 그렇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여기서는 체감상 4:6 정도로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하지만 분량이 짧음과는 별개로 공통루트는 궁금증을 전혀 불러일으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루하다. 이렇게 매력적이지 못한 공통루트도 참 오랜만이었다. 공통루트는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설명과 앞으로 관계를 맺을 인물들에 하나하나 스포트라이트를 비춰가며 그들의 속성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러한 정보들은 창조적이지는 못할지라도, '새롭다'는 속성 자체만으로 플레이어의 이목을 끄는 데 있어 상당한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하품만 나오는 것은, 초장 이후로 아무런 인상적인 사건이 없이 지루한 일상만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런 재미없는 공통루트는 이야기의 짜임에 근거하고 있다. 이 이야기에는 7명의 인물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데, 이 중 5명이 A라는 공통루트에 이어지는 B라는 줄기를, 나머지 2명이 C라는 줄기를 공유하고 있다. 이 B와 C는 주요 사건과 악역이 크게 차이가 난다. 그래서 이들에 관한 주요 정보 - 공통루트에 들어갔으면 분명 흥미를 불러일으켰을 - 는 모조리 개별 루트에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개별루트는 공통루트에서 개략적인 설명이 끝난 후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되는 부분이라, 공통루트에서 아무런 전조증상이 없다 갑자기 부각되는 대립조직에 대한 설명에 플레이어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단물이 빠진 공통루트와, 공통루트에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도 갑자기 설명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당황스러운 개별루트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다. 


 그렇지만 시나리오 구성에서 간과한 점이 하나 있는데, 이러한 공통루트-개별루트로 구성되는 이야기의 경우, 2회차부터는 공통루트는 전혀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 문단에서 기호를 빌려오면 A-B-C 순으로 읽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C는 공략제한이 걸려있어 맨 마지막에 플레이하게 된다) B에서는 외부의 대립조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는데, C에서는 갑자기 A에서도, B에서도 부각되지 않았던 어떤 인물의 묘사가 드러나게 되면서 상당히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단순히 C라는 이야기를 위해 그 인물의 묘사를 갑작스레 추가한 느낌이다. 물론 그 인물의 묘사를 제외하고서라도 이야기의 일관성 면에서도 C는 여러모로 겉돈다. A-C만 보자면 공통루트의 소재를 잘 활용해 이야기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말이다. C를 공유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가 이 작품의 주된 인물인데, C에서 부각된 어떤 인물에 밀려 그 자신의 루트에서조차 인상이 흐릿하다는 점도 부가적인 악영향이다. 


 이야기는 장면 중심으로 전개된다. 물론 모든 이야기는 장면 서술의 나열이지만, 이 게임은 각 중요사건의 마무리가 다소 부족하고, 또 다음 장면으로 진입할 때 별도의 타이틀이 나옴으로써 흐름의 맥이 끊긴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다. 그리고 이 게임은 스킨십에도 상당히 힘을 넣으려고 애쓴 모습이 보이는데, 애쓴 것과는 별개로 이야기와 스킨십을 적절히 섞어내지 못한 점도 마이너스이다. 그전까진 손만 잡다가 한 이벤트에서 잠자리까지 같이하는 막장스런 모습은 적잖이 당황스럽다. 더군다나 주인공은 오냐오냐 커온 귀족 자제라 더더욱 사고회로가 의심스럽다. 시대적 배경 - 불쾌하기 짝이 없긴 하지만 - 에 어울리는 UI와 BGM, 적재적소에 쓰인 다양한 효과음으로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흥이 깨지 않았을까 싶다. 


 nil admirari(닐 아드미라리)는 라틴어로 태연자약한 태도를 뜻하는데,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상냥한 마음 그대로를 간직하는 주인공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굳이 뜻이 있는 단어를 차용하면서도 이와 관련해 작중에서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nil admirari와 함께 짝을 이룬 '천칭'이라는 단어도 작중에서는 선택지에 따른 호감도 표시 및 '~와 ~를 천칭에 걸어'와 같은 상투적인 문구에 사용되는 게 전부다. 되려 이보다는 등장인물의 이름과 작중 등장하는 조직명에 있는 새와 관련된 한자, 종종 언급되는 비익연리라는 단어, 로고 등을 고려하면 차라리 새와 관련된 제목을 붙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말이다.


 작중 각 인물에 관련된 소재는 많이 나오지만, 개중 루이(塁)라는 인물의 다른 면을 알게 된 후, 주인공이 숙소로 돌아와 그가 만든 만화경을 보면서 그의 다양한 면이 있다는 점을 만화경이란 소재에 투영한 서술이 기억에 남아 개인적인 기록으로 남겨둔다. 


私はよろめくようにベッドに歩み寄り、

傍らに置いてある万華鏡を掴んだ。

ツグミ 「塁......」

総て嘘ではないのだ。

彼の中には様々な『塁』がいて、

見るたびに表情を変える。


* 이 포스팅은 허당님의 협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