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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게임

CHAOS;HEAD NOAH

by *새벽하늘 2016. 7. 31.

CHAOS;HEAD NOAH  HP


 CHAOS;HEAD는 5pb의 과학 어드벤처 시리즈 첫 작품으로 '망상 과학 ADV'라는 장르명을 달고 발매되었다. 거창한 장르명과는 달리 내용은 평범한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는 왕도 판타지이지만, 장르가 망상 '과학'이라 작중에서는 양자역학을 비롯한 온갖 과학 지식과 이를 토대로 구축한 게임 내의 가상 과학 이론이 난무한다. 이는 게임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플레이어에게 이해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게도 설명에 상당한 양의 텍스트가 투입된다.


 그런 데다 이야기는 주인공만이 아니라 다른 인물의 이야기도 풀어내고 있다. 주인공,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그리고 적대자로 장면이 빈번하게 전환되며 이에 따라 서술 시점도 1인칭 주인공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을 넘나든다.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어야 하므로 자연 필요 텍스트양은 또 증가하게 된다. 그 결과 이야기는 플레이어의 머릿속에서 종종 엉키게 되며, 진행 또한 느려져 답답하다. 처음 플레이했을 땐 내용이 반이 넘어갔음에도 도대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감만 있을 뿐 구체적 실체는 잡히지 않았다. 마치 내일 학교 갈 건 알아도 어떤 건 공부할지 모르는 것과 같았다. 


 한편 이야기를 전개하는 또 하나의 소재인 '엽기 살인'은 플레이어를 정신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 작중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느낌이 플레이어에게 전혀 전달되지 않고 있다. 사건은 일어나고 있지만, 주인공은 단편적인 외마디 비명만 지를 뿐이고, 주위 반응은 없다시피 하며 인터넷 반응이 전부이다. 주인공의 성격상 주위 반응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하긴 하지만, 때문에 현 상황이 주인공을 압박한다는 느낌은 거의 없어 이야기를 읽는 게 굉장히 재미없다. 


 역량이 안 되는데 일만 벌이는 건 확실히 문제다. 이야기는 아름다우나 동시에 어려운 길만을 더듬어 결말에 도달한다.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위에서 적은 사항들 때문에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했으나 정작 이야기의 흐름은 단조롭고, 빈번한 시점전환으로 이야기는 쉽게 엉키며, 독자적 과학 이론의 등장으로 쓸데없이 문장은 길어진다. 문장을 잘 꾸미기만 해도 읽는 게 고통은 아니었을 텐데, 흡입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지도 못할뿐더러 문장의 수준 또한 떨어져 재미가 없다. 그런 데다 텍스트양은 엄청나니, 게임은 '꾸역꾸역' 읽는 게 당연지사다. 글을 읽는 속도가 그렇게 느리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재미도 없으니 읽어도 읽어도 끝이 안 나니 짜증도 조금 났다. 좋은 재료만을, 그것도 많이 쓴다고 해서 맛있는 요리가 탄생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욕심이 조금 과했다.


 한편 독자적 설정을 구축한 게임의 경우 해당 설정 내에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해 종국에 가서는 '기적'과 '우연'에 의지하는 전개를 자주 보이는데, 이 게임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마무리가 '모두의 소망을 합쳐서' 라는 너무나 전형적인 끝맺음이라 재미가 없다. 정녕 이런 흐름 말고는 이야기를 풀어낼 방도가 없었는가. 또, 여태까지는 적에게 전혀 손도 못 쓰고 있던 주인공이 한번 생과 사의 경계에서 부활하니 갑자기 초월적 존재가 되는 것도 머릿속에 자연스레 물음표를 그리게 했다. 


 게임의 시스템은 주인공의 특성을 따라 선택지가 아닌 '망상 트리거'로 진행되는 점은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단편적인 즐거움만 있을 뿐 게임과 긴밀히 연결되는 건 아니라 뜬금없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게 흠이다. 그 외에도 게임을 잘하고 있다가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싶을 정도다'라는 텍스트가 나온다는 건 한국인이란 특수성 아래에서는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