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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게임

Beyond Eyes

by *새벽하늘 2015. 8. 16.

Beyond Eyes  HP

tiger & squid(Sherida Halatoe)


 E3에 공개된 트레일러를 보고 관심이 가게 되어 플레이하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게임이었다. 게임은 요즈음 많이 보이는, 이야기전개는 간단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으로 플레이어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소위 치유계 게임(다른 단어를 찾고 싶은데 이것 외에는 해당 게임을 지칭할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이었는데, 주인공이 사고로 실명해버린 소녀라는 것이 그나마 다른 게임에서는 찾기 어려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실명해버린 소녀가 탐험을 통해 세계를 느낀다는 컨셉은 좋다. 나도 '아름다운 인게임 그래픽'과 '실명해버린 소녀가 주인공'이란 점으로 인해 이 게임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실명한 소녀가 주인공이다 보니 게임의 템포가 무척이나 느려졌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세상에 앞이 보이지 않는데 누가 앞에 절벽이나 여타 장애물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신나게 달릴 수 있겠는가. 소녀는 느긋하게 걸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명한 소녀는 실명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있는 장소 외에는 전부 백지상태이다. 가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로 물체를 판별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며 선명하게 나타난 이미지는 다시 백색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결국,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소녀를 직접 조작하여 세상을 인식-백색을 원래의 풍경으로 바꿔나가는 것-해야 한다. 이는 신선할 수도 있지만, 위에 상기한 단점과 합쳐져 부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게 돼버린다. 빨리 세상을 '보고' 싶은데 주인공의 특성 때문에 속도를 낼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느린 속도로 세상을 인식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장애물에 부딪히고 강에 가로막혀 길을 우회해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니 여름의 날씨와 더불어 없던 짜증도 생길 뻔했다. 그래서 한 챕터당 그리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하나 혹은 두 챕터밖에 진행을 못 했다. (만약 게임이 시각장애인의 이런 불편함과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언뜻 보기에 이 게임은 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므로... 실패한 조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다 싶었던 점은 눈이 보이지 않는 소녀가 취하는 일련의 행동이었다. 그중 하나는 돌다리와 같은 위험한 구조물을 지날 때였는데, 비록 우리 눈엔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라도 자세를 낮추어 조심조심 발을 디뎌가며 걷는 것이 굉장히 현실감 있게 그려져서 좋았다. 또 하나는 친숙한 소리 외에 낯선 소리 - 차 소리, 모르는 사람의 외침, 경계하는 강아지 소리 - 는 두려워하여 그 근처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을 때였다. 단순히 낯선 소리 근처에 접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녀를 감싸고 있는 세상 또한 낯선 소리에 대한 소녀의 심리적 상태에 동조하여 밝은 수채화 풍의 세상에서 어둡고 우울한 세상으로 변하게 된다는 점이 특이할 점이었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아 청각과 촉각으로만 사물을 인식한다는 점을 역이용하여 이야기의 분위기가 크게 전환되기도 하는데, 그 부분에서도 조금은 감탄을 했다. 


 한편 이 게임이 전면적으로 내세운 '수채화 풍의' 게임은 생각보다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위에 썼다시피 이런 종류의 게임이 많아지다 보니, 딱히 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편하게 플레이하면서 아름다운 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게임은 지천으로 널렸기 때문이다. 아, 비 오는 장면은 화면 자체에 물방울이 맺히도록 표현해줘서 나름 마음에 들었다. 스테이지 진행은 소녀가 여태까지 칠해온 풍경이 비로 인해 없어져 제일 까다로웠지만 말이다. 


 이야기는 극히 간단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따로 접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