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nfinished Swan HP
Giant Sparrow
사실 난 게임을 고르는 눈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모든 사전정보를 다 거르고 게임을 선택하라고 하면 대작이라 불리는 게임을 선택하는 일은 드물다. 예전에는 '하지만 세상은 대략 60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니 나와 같은 사람도 그리 적은 수는 아닐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통계학적으로 추정된 잠정적 사실에 애써 자기 위안을 했다. 하지만 게임이 인기작이든, 아니든 간에 그게 뭐가 중요한가. 중요한 건 내가 즐겼냐, 안 즐겼냐라는걸 참 부끄럽지만, 최근 들어서야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깨달음을 기저에 깔고 있다는 걸 주지하길 바라며 이 게임의 감상을 시작한다.
내가 게임을 고르게 만드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미(美)'이다. 거창하게 말해서 그렇지, 요는 홍보 영상이 아름답거나, 캐릭터 디자인이 예쁘거나, 인게임 그래픽이 좋거나 하면 게임을 집어 들게 된다. 그런데 이를 중요 기준 중 하나로 내세우게 되면서 대두하는 문제점은 아름답게 치장만 한, 소위 똥 같은 게임에 낚일 확률이 다분해진다는 것이다. 더 웃기는 건, 나중에 내가 게임을 좋다 아니다로 판가름하는 기준의 중요한 잣대 중 하나인 시나리오는 사실 게임을 고를 때 별로 보지 않는다. 이왕 고른다면, 내용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안 접한 채로 시작하고 싶다는 묘한 고집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상술했던, 내가 대중적으로 좋다고 평가되는 게임을 스스로 못 고르는 이유가 바로 나에게 있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사전 게임 선택 기준으로서의 '미'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니 넘어가자.
순전히 아무것도 없는 방에 페인트만 던지는 것만 보고 이 게임을 사야겠다 마음먹었다. 정작 페인트를 던지는 건 1챕터에서 끝나지만...
The Unfinished Swan, 통칭 미완성 백조 또한 나의 이 사전 선택 기준으로 선택된 게임이다. 아무것도 없는 흰 공간에 검정 페인트를 뿌려 공간을 보이게 만드는 동영상이 지독하게도 내 눈길을 끌었었다. 그리고 언젠가 기기를 사면 꼭 이 게임을 해보리라 마음도 먹었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게임을 이것저것 봐 둔 시기와 실제 기기를 구입한 시기와의 간극이 길었기 때문에, 막상 기기를 구입하니 해보겠노라 생각한 게임들은 기억의 저편에서 잊혀가고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여기저기로 흩어진 계정을 정리하다가 이 게임을 사야겠다 메모한 걸 발견하게 되었고, 그 길로 이 게임을 구입하게 되었다.
The Unfinished Swan은 사실 먼로의 이야기이자 왕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맨 위에 있는 스크린샷과 같이 게임 제목과 같은 제목의 책이 메인에 있다. 그리고 게임을 시작하면 책이 펼쳐지면서 The Unfinished Swan이라는 책을 나레이터가 읽어준다. 이야기는 '... 그리고 어머니께 받은 미완성 백조 그림이 사라진 것을 알고 먼로는 발자국을 따라 그전까진 보지 못했던 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와 같은 내용으로 마치고, 장소는 책이라는 현실에서 게임이라는 꿈으로 넘어간다. 그렇게 주인공은 미완성 백조를 찾아 자신에게 있어서는 현실이지만, 누구에게 있어서는 꿈인 그런 애매한 세계를 여행하기 시작한다. 여행하면서 먼로는 중간중간 어느 왕에 관한 이야기 조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전혀 관계없는 인물의 이야기를 왜 다룰까 싶었는데, 마지막 장에서 이 둘이 만나게 되면서 그 관계가 밝혀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태까지 주인공이 지나온 맵을 왕의 시각에서 다시 밟아오는데, 그러면서 왕의 독백을 듣게 되니 조금은 뜬금없다고 생각했던 왕의 이야기들이 그제야 정리가 되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먼로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지만, 이 게임은 왕의 후회 담긴 회고록이자, 주인공인 먼로 둘의 이야기였다.
이렇듯 게임 자체는 재미있게 했지만, 솔직히 이 게임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이 게임이 가진 태생적인 문제인 멀미 때문이다. 게임이 어지러워 봤자 얼마나 어지러울까 하는 비웃음은 접는 게 낫다. 30분을 해 보고 속이 안 좋아져서 게임을 강제로 그만둬야 했다. 시선이 360도로 회전하는 데다, 장소이동까지 더해지게 되니 그 울렁거림은 상상을 초월한다. 처음에는 단순 컨디션의 문제였나 싶었지만, 문제는 내가 아니고 게임에 있었다. 그래서 게임을 - 트로피까지 포함해 - 전부 끝내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해 본 적은 없지만, FPS 게임이 이와 비슷한 감각이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이 게임을 시작하게 되면 바로 The Unfinished Swan이란 책의 내용을 나레이터가 읽어주는데, 음성이 자막보다 늦게 나왔다. 나레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장을 거듭할 때마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마다 싱크가 안 맞으니 영 보기에 불편했다. (일본어판 한정)
은근히 보는 재미가 있는 활동란
한편, 이 게임은 활동란에 남는 기록이 소소하게 재미있었다. 게임을 구입하거나, 트로피를 따면 갱신되는 그 활동란 말이다. 보통 이 활동란은 무미건조하게 트로피를 땄다, 게임을 구입했다와 같은 시스템 메시지로 채워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게임은 똑같이 시스템상 메시지이지만, 여기에 특정 액션(특정 부분일 수도 있겠다)을 취하면 활동이 갱신되는 기능이 있다. '거미에게 먹혔습니다', '스테이지 내를 더럽혔습니다' 따위와 같은 것들 말이다. 별것 아닌 거긴 하지만, 내가 이런 행동을 했구나 싶어 괜히 웃음을 짓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트로피는 많지는 않지만, 복병인 것이 두 개 정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minimalist라는 트로피이다. 이 트로피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제일 어려운 1장에서 달성할 수 있는 트로피인데, 그 조건이란 페인트를 3개 미만으로 던져 감시탑에 도달하는 것이다. 도저히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딸 수가 없는 트로피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공략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도대체가 똑같이 따라 해도 특정 지점 - 나무 계단에서 공간이 조금 있는 중간지점 - 에서 자꾸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좋아서 산 게임이니만큼 트로피도 다 따고 싶었지만, 안 되니 짜증이 나서 게임을 며칠 동안 방치해버렸다. 그러다가 페인트볼을 첨부한 동영상을 참고해서 어찌어찌 클리어할 수 있었다. 이 트로피를 딸 때 게임을 끝냈다는 달성감에 어찌나 뿌듯함을 느꼈던지. (제일 마지막에 달성한 트로피였다)
정말 따기 어려웠던 트로피 두 개 : Balloonist, Minimalist
따기가 힘들었던 트로피는 이거 말고 하나가 더 있었는데, balloonist이다. 다른 풍선은 풍선 레이더라는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찾을 수 있었는데, 유독 거미가 나오는 3장만큼은 풍선 레이더가 작동은 하는데 게임 내 시간대가 밤인지라 도대체 풍선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인터넷에서 영상을 본 결과, 내리막이라 빨리 지나치는 곳에, 그것도 사각지대에 교묘히 풍선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동영상은 내리막을 다 내려온 뒤, 조명을 밑에서 쳐올라가면서 풍선을 얻었는데 이 또한 아무리 똑같이 따라 하려 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포기해야 하나 싶다가 차라리 위에서 조명과 같이 내리막을 내려가며 풍선을 공략해보는 걸로 전략을 바꿨고, 결국 두 번 만에 성공했다. 3장이 조명이 없으면 일정 시간 후 거미에게 먹혀 사망하게 되는지라 더더욱 어려웠던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