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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두과자/게임

콘크리트 지니

by *새벽하늘 2020. 9. 5.

 사람들이 떠나가 예전 같지 않은 마을을, 나의 장기인 그림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주인공 애시는 썩 기뻤을 것이다. 그림에는 소질이 있지만 이런 나를 봐주지 않고 괴롭히기만 하는 마을 아이들과 한 선을 긋게 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올리브그린의 때가 뒤덮은 세계에서 그와 그가 휘두른 붓만이 채도와 대비가 살아있다. 신비로운 붓은 자신마저도 칠해버렸는지 삽입된 장면에서는 유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도 든다. 특유의 뚝뚝 끊어지는 움직임이 참 정감 있지만, 영상에만 머물렀어야 할 특성이 게임을 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쳐 뻣뻣한 느낌이 든다.

 마을을 탐험하는 데는 많은 경우 '지니'라는, 그림으로 그린 생명체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을 곳곳에 흩어진 애시의 찢어진 스케치북에서 머리, 몸통, 다리, 꼬리 및 장식 도안을 얻은 다음, 지정된 장소에 붓으로 도안을 그리면 애시와 함께 할 친구를 만들 수 있다. 게임을 불러오는 중 나오는 대기화면에서는 지니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그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큰 의미는 없다. 

 탐험에는 애시의 스케치북도 필요하다. 애시의 스케치북은 게임 내 메뉴인데, 애시의 생각과 느낌, 간단한 밑그림으로 표현된 수집요소가 실려있는 그야말로 '스케치북'이라 남의 낙서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여기에 실린 지도는 거의 평면에 가까워 방향 정도밖에 참고가 되지 않는다. 실제 애시가 둘러봐야 할 마을은 층위가 있어 위아래로 넘나들어야 하는데 이런 단차가 확연하게 드러나 있지 않아 직접 발로 뛰는 게 더 낫다. 

 그렇게 조금은 힘들게 마을을 훑다 보면 특정 장소에 전구가 있는데, 이걸 그림으로 밝히면 마을이 재건된다. 그렇지만 그림 그리기는 지니를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평면 위에서 이뤄지지만, 목표인 전구는 입체 공간에 있는지라 전구를 모두 밝히는 간단한 작업에 어려움이 따른다. 거기에다 선은 검은색에 전구는 투명이라 배경에 묻혀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잦다. 그림 또한 지니 때와 마찬가지로 도안을 고르는 정도로 자유도가 높진 않지만, 벽에 그리면 조금의 움직임 - 휴대폰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라이브2D 정도의 느낌이다 - 이 있어 밋밋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야기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악동들이 기어이 애시를 훼방 놓은 것이다. 마을을 위한 그림은 검은 물감으로 덮이고, 지니는 돌변한다. 자업자득이라고 돌변한 지니에 의해 악동들이 죄다 잡혀가지만, 애시는 자기를 괴롭힌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애쓴다. 게임도 이에 맞춰 탐험과 퍼즐에서 액션으로 장르가 변한다. 평온하며 똑같은 전개에 지루해질 때쯤 딱 적절하게 분위기가 변화하여 좋았다. 목표 연령층은 어린이인지 액션으로 장르가 바뀌고 나서 난이도 설정에 대한 조언이 나와 친절하다. 

 악동들은 애시를 분명 오랜 시간에 걸쳐 괴롭혀왔을 거다. 그렇지만 애시는 사람이 곤경에 처했으니 구해야 한다는 도덕성이 우선하는 인물이다. 그들의 행동이 가정환경에서 연유한 걸 알고 이해해준다. 덕분에 구사일생한 악동들도 멋쩍을 텐데도 깨끗하게 미안하다고 - 물론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라는 말은 불필요하지만 - 사과한다. 애시도 시원스럽게 사과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마을도 구하고 서로 친해지게 되며 이야기가 끝난다. 사과의 과정이 충분히 그려지지 않지만, 실제는 이보다 더 맥락 없이 싸우고도 어느새 같이 놀기를 반복하니 고려할 수 있는 정도다. 방점은 어디까지나 마을 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