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허허벌판이라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인도 이주 계획의 설계자 '너굴'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준다. 모든 것은 그의 손바닥 위다. 주민을 늘리고, 섬을 개간하고, 집을 증축해, 마지막엔 사심 가득한 목표인 유명 음악가 초대까지 그의 계획대로 차근차근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누비는 '동물의 숲'이라는 세계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본체의 시간과 연동되어 시시각각 변하는 기상은 외출이 자유롭지 않은 지금이라 더욱 빠져든다. 바다로 가지 않으면 항시 배경음이 들려 자연의 소리가 두드러지게 들리지 않는 게 못내 아쉽다. 환경 효과음과 게임 내 배경음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외에 작물이나 과일을 심을 수도 있고, 곤충채집을 할 수도 있으며,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다. 곤충과 물고기는 시기별로 출현하는 종도 달라지는데, 도감에 등록까지 되니 괜히 수집욕을 불러일으킨다. 박물관에 전시까지 하면 더욱 멋있다.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건 꽃 교배다. 겉보기엔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근간에선 철저하게 멘델의 법칙을 따르니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나를 대신해 섬을 누빌 존재도, 도와줄 존재도, 이웃할 존재도 하나같이 귀엽다. 미움받지 않게 설계된 존재다. 꿍꿍이가 있을지언정 큰 피해라고는 기껏해야 미술품 사기 정도이니 현실에 비하면 약과다. 이웃들은 기본적으로 친절하지만, 성별마다 정해진 성격이 존재하여 다소 아쉽다. 성격은 8종류나 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대화 유형이 보일 만큼 회화의 다양성이 떨어진다. 그래도 정을 주는 만큼 또 돌아오는 솔직함이 보장받는 세계다.
이외에도 놀라웠던 점을 꼽자면 끝이 없지만, 이 모든 것이 처음의 감격을 지나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가 되니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남들이 다들 하는 섬 꾸미기를 시작할 때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거다. 쉼 없이 대출금을 갚다가 막상 자유가 찾아오니 망망대해에 던져진 기분이다. 입시를 위해 내내 치열하게 달려왔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에 내던져진 이후에도 정해진 규범 속에서 삶을 영위해 온 사람에게 자유란, 새로운 고민거리다. 할 수 있다면 창의성도 발휘해보라고 하지만, 자유든 창의력이든 연습이 거듭돼야 발휘할 수 있어 공사는 지지부진하다.
그렇지만 문제는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에도 존재했다.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이었다. 아기자기하다고 느꼈던 동작들과 화면구성이 역으로 게임의 속도를 지연시켰다. 마을을 꾸미기 위해 같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야 할 때가 있는데, 물건을 한꺼번에 만들 수가 없다. 다른 섬에 놀러 가거나 혹은 내 섬에 누군가가 놀러 올 때가 되면 뜨는 수속 창도 처음에는 여행가는 기분이라 너무나 설렜지만, 이제는 생략할 수가 없어 그저 무의미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만약 이게 1:1 교류라면 괜찮겠지만 다인수 교류라면 해당 섬에 놀러 온 모든 이가 게임 속에서 하는 행위를 즉시 멈춰야 하고 강제적으로 움직임이 제한된다. 이게 만약 아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이 아니라 타인과의 거래라면 일련의 과정은 단지 스트레스일 뿐이다.
하지만 물건은 만들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살 수도 있는데, 상점에 나오는 물건의 수는 매일 한정된 데다 색상도 다양해 섬을 온전한 자신의 취향으로 채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거기다 물건의 색상은 섬마다 고정되어 있다는 게 더 절망스럽다. 과일도 혼자서만 게임을 한다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종류가 존재하고, 중간중간 열리는 낚시대회, 곤충채집대회도 다인수가 유리한 걸 보면 게임이 교류를 강요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섬을 누비는 걸 감수하고서 교류하기란, 믿음을 주기란 이 험난한 세상에서는 너무나 어렵다. 동물 주민들처럼 마냥 선하지만은 않은 게 현실의 이웃이다.
상술했다시피 게임은 어느 정도까진 너굴의 계획에 의해 진행되지만, 이후에는 온전히 개인의 의지 나름이라 스스로가 재미를 붙이지 못하면 밋밋하다. 이를 타파하고자 게임은 현실과 연동한 행사 또는 대회가 주기적으로 열린다. 그렇지만 본체 시간을 돌려 행사를 먼저 보는 게 어느 선까지 제한된 걸 보면 게임은 교류에 더해 유유자적한 태도를 권장함을 알 수 있다. 모든 게 나와 맞지 않는데 어쩌다 이 게임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새해맞이 행사는 갇혀 있던 1년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올해는 과연 상황이 어떻게 변할는지. 부디 모두의 앞날에 지금보다는 희망이 있을 2021년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