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미래의 런던.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고, 악행도 기술에 발맞춰 최첨단의 방식으로 자행된다. 시작은 해커집단 데드섹의 괴멸이었고, 목표는 데드섹의 부흥과 런던 해방이다. 이야기에 다수의 부가과제가 있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자사의 다른 게임처럼 지역을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눠 해방하는 방식도 추가되었다. 물론 이 '지역 해방' 과제는 다른 부가 과제와 마찬가지로 필수는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수월하게 이끌어 줄 우수한 요원은 대부분 지역 해방 과제의 보상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반은 강제되는 점이 있다. 안타깝지만, 이들 과제는 대부분이 쉽게 해결되어 큰 재미는 없다.
그렇다고 본론인 이야기가 재미있냐면 그것도 아니다. 데드섹을 괴멸시킨 조직 '제로데이'를 찾아내면서 곁다리로 다른 악의 집단을 타도하는 과정에 쾌감은 적다. 문명사회에서의 처단은 점잖은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만, 게임에서만은 타인을 의식한 과장된 행위 - 이를테면 2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 도 있었으면 했는데 그러진 않았다. 최첨단이란 껍질을 두르긴 했지만, 악의 근본은 시대를 거듭해도 대동소이하다. 이야기는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진행되고, 또 끝난다.
그래도 404라는 집단이 얽힌 이야기는 각별하다. 데드섹의 시작과 끝은 '제로데이' 이지만, 404에 얽힌 이야기는 세계를 지배한다. 첨단기술이 막 본격화될 때 나온, 인공지능이 창조주에게 반역을 드는 이야기에 소름 끼쳤던 때가 떠오른다. 아무렇지 않게 접했던 게임 속의 편리함은 이젠 없다. 엔딩까지 진행하고 난 후 발생하는 새로운 부가 과제 - 도대체 왜 '부가'의 위치인지는 모르겠지만 - 까지 진행하면 더욱 그렇다. '제로데이'로 가기 위한 교두보 중 하나로만 취급되는 게 아쉬울 정도다.
활약은 특정 인물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변혁은 민중이 일으켜야 한다는 의미가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와치독스 리전에서는 게임 속에서 나오는 인물 누구나를 영입하여 데드섹의 일원으로 만들 수 있고, 그중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이가 바로 주인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역시 홍보를 위한 문구는 조금은 과장된 면이 있다. 거의 한 인물로만 조작하여 이야기를 끝냈음에도 마음을 둘만 한 '우리 편'을 찾지 못해 시종일관 붕 뜬 느낌이 있다. 해당 인물에 대해 알아갈 여지가 거의 없어 친숙함을 느낄 수 없어서인 듯하다.
정보 값은 영입 시에 주어진 게 다이다. 이 또한 제작사에서는 나름의 사연을 마련하였다고 하지만 몇 번 영입해보면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는 걸 볼 수 있다. 각 인물에 부여된 고유 능력도, 상황별로 골라 쓸 수는 있겠지만 몇몇 직업군이 강력해 큰 소용이 없다. 되려 과거 한 인물이 모두 가지고 있던 해킹 능력을 다양한 인물 유형으로 나누어버려 개인이 운용할 수 있는 기술의 폭이 줄어드는 단점만 부각됐다. 다양한 기술로 무장한 플레이어가 뭉쳐 임무를 해나간다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긴 하지만, 온라인 모드의 정체도 알 수 없는 현 상황에서 와치독스 리전의 입지는 다소 애매하다. 게임을 시스템적으로 끝내기 위해 필요한 '트로피'도, 다양한 인물을 운용하는 시스템 때문에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한다.
어쌔신 크리드 신디케이트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 상태에서 접한 와치독스 리전은 곳곳이 그라피티로 떡칠 됐기 때문인지 최신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묘하게 화질이 떨어져 보였다. 그런데 설마 내용 면에서도 어정쩡한 인상으로 남을 줄은 몰랐다. 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눈부신 풍경은 완성도가 전제되어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