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소설도 처음 읽을 때는 인물이 누군지 파악해야 하므로 이야기에 푹 빠질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만약 외국어로 된 소설이라면, 번역되었다 하더라도 이 어려움은 더할 것이다. 여기에 어쌔신 크리드 3의 외전인 리버레이션은 한술 더 뜬다. 3도 군데군데 결락된 곳이 있어 어색한 부분이 있는데 이건 외전이고, 당시 비타로 출시되었기 때문인지 이야기가 3보다도 촘촘하지 못하다. 정식 시리즈라면 영상으로 곳곳에 삽입되었어야 할 내용이 본작에선 시퀀스 전환 시 나오는 화이트룸(대기화면)에 간단하게 설명을 써 놓는 거로 대체된다. 그러니 각 시퀀스는 유기적이기 않고 일화를 보는 느낌이 강하다. 아비가 죽어가는데 암살 대상을 쫓으러 가는 주인공 아블린이나, 편집증에 휩싸인 아가테도 설명이 충분치 않아 그저 현상으로만 지나갈 뿐이다. 그래도 반전은 놀라워서, 조금만 더 이야기가 옹골찼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현대편(본편)은 없다. 애초에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앱스테르고가 만들었다고 나오니 앱스테르고의 프로파간다용 미디어라 보는 게 옳다. 그렇지만 진실을 알리려 애쓰는 모종의 개입이 시스템에 반영되니 구석구석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은 시리즈 최초의 여성 암살자이다. 여태까지의 어쌔신 크리드가 그랬듯이 리버레이션의 주인공 아블린 드 그랑프레도 뭐든 잘하는 인물이다. 성격도 진취적이라 좋다. 그렇지만 여태까지의 암살자들이 별도의 시스템 없이도 해결했던 임무들을 여기서는 페르소나를 바꿔가며 해결해야 하는데, 게임을 끝낸 지금도 도대체 왜 이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특히 숙녀 페르소나는 사용할 일도 없고, 고유 수집 요소에 딸린 설명문 '신사를 유혹해서 브로치를 얻으세요'가 요즘 시대상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거슬려서 혼났다. (물론 게임이 만들어진 시기가 한참 전이라 감안해야 할 부분이긴 하다)
게임 외적으로는 - 또 말하게 되지만 - 비타용 게임이던 걸 이식했기 때문인지 진동 대응이 안(거의?) 되어 게임이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색감도 진한 데다 대비가 강한 화면은 조잡하게 느껴진다. 3에서처럼 수집요소가 맵에 표시되지 않고 가까이 가야 표시되는 게 불편하긴 했지만, 날아가는 종이를 붙잡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수집 요소는 페르소나별로 분리되어 같은 장소를 반복해서 돌아야 하고, 빠른 이동도 없지만 구현된 곳이 좁다 보니 허용할 수 있는 범위다. 이를 위해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 설정을 기본으로 했을 때의 이야기지만 - 감도가 높아 자유 질주 때 엉뚱한 방향으로 자꾸 흘러가니 짜증 난다. 이 짜증남에 박차를 가하는 군소리는 또 어떠한가. X와 O의 버튼 할당이 게임 안에서조차 왔다 갔다 하는 건 이미 해탈했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건 '줄리어스 시저'라는, 게임과 아무 상관 없는 명칭이 플래티넘 트로피에 붙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