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해 온 어쌔신 크리드는 자유를 목표로 하는 암살자의 이야기였고, 그들의 대척점에는 템플러가 있었다. 암살자들의 이야기를 몇 작이나 봐온 플레이어는 암살자는 정의로, 템플러는 악으로 치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게 무를 자르듯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며, 관계도 복잡다양하다. 당연히 암살자들도 철옹성 같은 정의가 아니며, 질서와 통제를 표방하는 템플러 진영도 사실은 그들만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
모든 이야기는 쓰는 사람의 것이다. 사실로 보이는 것마저도 조작은 하지 않을지언정 고의적 누락과 제공하는 정보의 양으로 정당하게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암살자의 이야기에서는 템플러가 아주 잘못된 단체로 나왔는데, 템플러 시점인 어쌔신 크리드 로그에서는 반대로 암살자들이 아주 고약한 악당이 된다. 그렇지만 어떤 이야기이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서라도, 개척지의 암살단들은 엄선되지 않은 인선이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도 형편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우두머리라도 조금 멀쩡했다면 엉성한 배나마 어떻게 잘 관리할 수 있었을 텐데 수장인 아킬리스부터가 남의 조언을 듣지 않는 사람이라 모든 걸 망쳤다.
그래서 셰이의 이야기는 변절로 매개된다. 암살 대상이 약자인 경우가 많아 내면에서는 이 행위가 정당한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으며, 천신만고 끝에 찾은 선행 인류의 사원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기구인 것을 알게 되고 조언을 하지만 철저히 무시당한다. 여긴 있을 곳이 아니다. 보는 사람에게도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전개는 셰이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암살자도 점검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에 대한 경고이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현실이 아니라 간과하고 있었던 걸 재차 깨닫는다. 악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것만큼이나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되는 것도 역시 흔한 전개이지만 그들을 자신의 손으로 거두는 건 언제 봐도 비극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는 최고 양념이다. 후반부를 보면 호프가 몇 수를 읽는 책략가인데 참 안타깝게 되었다.
현대의 이야기도 매력적이다. 새삼 그렇게 느꼈다. 최근에 플레이한 게 오리진과 오딧세이라 거의 잊을 뻔했다. 이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되는 암살자와 템플러의 대립이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걸 정보의 편린으로 보며 추측하니 즐겁다. 오리진부터는 거의 구색만 갖춘 것이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