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간론파 희망의 학원과 절망하는 고등학생 HP
스파이크
단간론파는 하이스피드 추리 액션으로,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대화 속에서 모순점을 찾아 논파하는 게임이다. 하지만 직접 추리해본답시고 난이도를 중간 이상으로 선택하려 한다면 말리고 싶다. 왜냐하면, 난이도로 달라지는 것은 추리 단서 제공량의 다소가 아니라 학급재판에서의 미니게임 난이도 및 모노쿠마 메달 획득량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미니게임이 번거롭기 짝이 없었고, 부가요소 100% 공략에 필수적인 모노쿠마 메달은 게임 클리어 후 학급재판만 따로 플레이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 진행의 원활성을 위해 되도록이면 난이도는 가장 쉬운 걸 선택하라고 하고 싶다.
그러나 단간론파는 하이스피드 추리액션이라는 장르를 표방하는 것에 비해 정작 추리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게임이 칭하고 있는 하이스피드 추리 액션이라는 말은 이야기상의 추리가 아닌 미니게임에만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 추리 또한 등장인물들이 알아서 힌트를 줄줄 흘려주고, 어떤 경우에는 등장인물이 힌트를 흘리기 전부터 이미 범인이 누군지 짐작이 갈 때도 있을 만큼 추리 난이도 자체도 낮아서 플레이어가 직접 추리하는 부분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추리소설과 같은 본격적인 추리를 생각하면 조금 김이 샐 수도 있다.
거기다가 이야기는 왕도적이었다. 그러나 이야기 진행 중간중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뒤집는 몇몇 전개들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전체적인 이야기는 왕도적이었다 할지라도 플레이 자체는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하였다. 그중 하나는 밀실에 대한 관념이다. 보통 우리가 드라마나 만화, 영화 등에서 밀실을 접하면 '탈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본 게임에서는 이를 뒤집는다. 밀실에서 탈출하면 안 된다니? 게임에서 등장인물이 처한 처지를 생각하면 도저히 말이 안 돼서 되려 혼란스러웠다. 이 밖에도 일반적인 관념을 뒤엎는 게 몇 있다 보니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덕분에 도대체 이 이후로 어떻게 진행될지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진행한 게임이, 정작 마지막에 오게 되니 김이 새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최종 보스의 행동원리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면 이해하기 힘들어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이해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작품은 아니었다. 도리어 최종 보스가 도대체 무슨 떼를 부리나 싶었고, 그저 황당했다. 그전까진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지막 때문에 미묘해졌다. 잘 지어놓은 밥에 재를 뿌리는 격이라고 할까.
한편, 상식을 뒤엎는 전개와 함께 이 게임에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요소 중 하나가 연출이었다. 그중 마지막 챕터에서의 연출은 꽤 기억에 남았다. 솔직히 유치하다고 하면 유치하긴 한데 그 상황과 그 대사, 그 연출이었기 때문에 유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멋지다고 느낀 것 같다. 매번 비슷한 키스신을 보면서도 어떤 키스신에서는 감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외에는 음악도 게임의 분위기에 맞게 잘 만들어진 것 같고, UI나 스틸도 준수하다. 클리어 특전 또한 스틸, 동영상, 사운드트랙, 기타 샵 특전 일러스트 등 다양해서 단발적 플레이로 그치지 않게 만들어 놓았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소소한 단점은 존재한다. 우선 맵에서 아날로그 패드를 움직이고 캐릭터를 하나하나 클릭해야 하는 게 너무 귀찮았다. 터치로 나왔다면 훨씬 편했을 것 같은 데 말이다. 보니까 비타 이식판도 나왔는데 거기서는 좀 개선됐나 모르겠다.
그리고 기대했던 학급재판은 기대대로이면서도, 동시에 실망스러웠다. 처음에는 기대했던 만큼 긴장감도 있었고,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상황설명이 다 돼서 결론을 낼 법한데도 계속 미니게임이 진행되고, 등장인물들은 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붕어 뇌인지 멍청한 발언을 계속해서 슬슬 짜증이 났다. 미니게임의 진행을 위해서인 건 알겠지만, 같은 상황을 증거만 추가하며 계속 반복하고 늘어지는 건 좀 아니었다. 특히 1챕터에서는 재판 전에 이미 다잉메시지로 범인을 알아버려서 더욱 답답했다. 차라리 이 점에서는 총성과 다이아몬드의 교섭파트나 역전재판이 훨씬 재미있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초점이 특정 캐릭터에게 너무 몰린 것 같았다. 특히 학급재판에서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설령 추리를 하지는 않더라도 궁금한 점은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잘못된 추리라도 몇 마디 말할 법도 한데, 주요 캐릭터를 제외한 인물들의 발언은 대부분이 백이면 백 황당무계한 이야기였다. 소 뒷걸음치듯이 아무렇게나 던진 추리가 맞을 수도 있는 노릇인데 그렇게 한번 '던져' 보는 것조차 그들은 하지 않아서 답답했다. 그리고 마지막 학급재판에 가면 학급재판에서 주도권을 이끄는 그들조차 전 챕터에 비해 너무나 무력하고 멍청해져서 고의적인 주인공 띄워주기라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이러쿵저러쿵 말하긴 했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참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 여태까지 내가 주로 해 오던 게임인 여성향 게임이 매우 보잘것없이 보이는 현상이 발행한 것이다. 심지어 회의감까지 들었다. 고작 판떼기 하나 세워놓고 스토리도 그렇게 좋지도 않은, 호화 성우 도배 게임을 내가 도대체 왜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내 얼굴에 고스란히 침을 뱉는 격이 되긴 하지만 여하튼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잘 만들어진 게임을 접하다 보니 이제는 좀처럼 다른 게임을 잡지를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